사막

창작
2022.06.12

 나는 우리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나는 눈앞의 남성에게 언성을 높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설령 무엇이 들리거나 보인다 해도, 선이 엉키고 끊긴 회로처럼 돼 버린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평소의 자신답지 않다는 건, 이미 옛적에 깨달았다. 하지만 남성의, 크로커다일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면서, 목이 쉴 때까지 울부짖고 있는데 어째서 크로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 건지. 차라리 눈물샘이 메마를 때까지 울었던 그날처럼 나를 내치던가. 아니면 나의 추한 모습을 보고 비웃기라도 하던가. 어째서 무덤덤한 얼굴로 날 내려다보고 있는 거야? 어째서 너의 눈은 망설임 없이 나를 향하고 있는 거야? 왜? 왜?!

 하지만 너는 나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너는 그저, 새하얀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다가 오른손을 내 어깨에 짚어 밀어낼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너의 목소리. 모래처럼 메마르고 갈라진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너의 한마디, 한마디가 고막에 박힌다. 나는 경악했다.

 “너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군.”

 가슴에 쌓아 올린 것이 끝내 무너지면서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어지는 암전. 이젠 정말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각도, 청각도 바람이 불지 않는 바다, 캄 벨트처럼 고요해졌다. 얼마 안 가서 나는 눈을 떴다. 시야가 밝아지자 귀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뜨거워진 나는 결국 손을 들었다. 그리고 작은 손으로 크로커다일의 얼굴을 후려쳤다. 아, 손이 아프다. 손바닥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발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어째서, 어째서 맞은 거야? 너는 내 손찌검을 피할 역량이 되잖아. 뒤로 빠진 다음 내 손목을 붙잡거나, 모래로 흩어지면 될 텐데. 어째서…? 창백한 그의 낯빛에 붉은색이 물들자 나는 움츠러들었다. 크로, 아프지 않아? 미안해. 속으로는 그런 말을 되뇌고 있었다. 나에게 맞고도 입을 다문 크로의 모습을 보니 그가 걱정되고, 무서웠다. 미안해, 미안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 대신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눈물이었다. 어떡하면 좋지? 이게 아닌데.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정신을 차리자 발이 내디딘 곳은 호수 위에 세워진 레인 디너즈의 다리였다. 눈앞의 광경에 나는 탄성을 흘렸다. 그리고 주저앉아 그 자리에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해. 크로. 정말 미안해. 그제야 목소리가 나왔다. 물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한참 동안 사과를 반복했다. 그 사과를 받아줄 사람은, 이제 눈앞에 서 있지 않은데. 나는 계속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널 볼 면목이 없어. 나는 지금도 널 사랑하는데, 20년간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는데. 결국 내가 널 내치고 말았어. 외로워. 이제 내 곁엔 아무도 없어. 메르 언니도, 앨리스도, 파트라도, 크로 당신도. 메마른 샘밖에 존재하지 않는 사막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하늘은 어둡고, 달빛이 만천하를 비춘다. 일교차가 큰 사막은 낮엔 덥고, 밤엔 춥다. 나는 밤의 사막을 혼자 걷고 있다. 외롭고, 춥고, 목을 축일 장소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발에 밟히는 것은 메마른 모래뿐. 결국 나는 주저앉았다. 오아시스 따위 존재하지 않는 건기의 사막에서 모래를 뭉친 것은, 나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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