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함께였기에 찬란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나.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난 크로커다일은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맞으며 간단하게 샤워를 한 뒤, 욕실에서 나와 새것처럼 보이는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아내었다. 크로커다일은 축축해진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오른손으로 옷장의 문을 열더니 그 안을 짧게 훑어본 다음 정장 바지와 와이셔츠, 조끼를 한 벌씩 꺼내 들었다.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크로커다일은 침실에 들어갔다. 어젯밤 침대 밑에 떨군 갈고리를 오른손으로 잡아 꿰맨 자국이 남아있는 왼팔 손목에 꽂은 다음 고정했다. 그리고 그는 자리를 뜨지 않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등에 남은 흉터가 옷깃에 스치자 찌릿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시선은 옆으로 향한다. 그리고 아직 반지를 끼지 않은 손으로 잠에서 깨지 않은 여인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윈프레드였다.
크로커다일의 입술에 어울리지 않는 다홍색 립스틱이 번졌다. 두 손으로 크로커다일의 얼굴을 붙잡고 입술을 맞춘 여인은 눈물을 떨궜다. 크로, 나… 또 혼자가 됐어…. 크로커다일은 눈살을 좁혔다.
앨리스에 이어 파트라까지 집을 나가자 마음이 심란해진 윈프레드는 언제부터인가 알라바스타에 정착한 크로커다일을 찾아갔다. 니코 로빈이 손님이 왔다고 했을 때, 크로커다일은 누가 찾아왔는지 묻지도 않고 돌려보내라 했지만, Sir·크로커다일의 손님이 아니라 크로커다일의 손님인 것 같다는 웃음 섞인 말에 크로커다일은 자기 말을 철회한 뒤 들여보내라 하였고, 그 손님은 예상대로 윈프레드였다.
술도 잘 못 마시는 주제에 크로커다일이 건네는 술을 받아마시더니 한 병을 비우기도 전에 만취가 되어서 20년 전과 같은 실수를 벌였다. 그는 외로움을 느끼면 술을 퍼마시고 남자를 찾는 버릇이 있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초면이든 구면이든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오르면 입을 맞추는 것부터 시작하여 천천히 서로를 탐냈다. 살갗이 맞닿으면서 느껴지는 체온, 포만감이 윈프레드를 외로움에서 멀어지게 해주었다. …윈프레드는 언제부터인가 그 행위에 중독되어있었다.
윈프레드의 사생활을 크로커다일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전보벌레로 그에게 전화를 걸면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가 자그맣게 들리는데, 전화를 걸 때마다 매번 목소리가 달라졌다. 그래서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가 아무 남자나 만나고 다니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위니의 목소리가 아닌, 남성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크로커다일은 질투심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지금의 크로커다일이 함부로 손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때까지, 기회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왜, 어째서? 이번에 윈프레드가 찾은 남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다.
크로커다일은 입꼬리가 찢어질 정도로 웃었다. 아니, 이것은 오히려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 무엇보다도 원하고 절실했던 그가 제 발로 내 손 안에 들어온 것 아닌가! 크로커다일은 엄지손가락으로 윈프레드의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을 훔치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쉿…, 괜찮다. 위니……. 내가 곁에 있지 않나….”
곧이어 두 사람은 입을 맞추었다. 입술을 맞춘 채로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입술을 맞물리고, 틈 사이로 혀를 밀어 넣어 입 안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상대방에게 좀 더 파고들고 싶다는 마음에 몸을 밀착하니 두 사람의 가슴이 맞닿아 뭉개졌고,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의 허리를 왼팔로 끌어안은 채, 소파 위에 윈프레드를 눕혔다. 그들이 쥐고 있던 잔은 윈프레드가 크로커다일에게 입술을 맞춘 순간 놓쳐서 떨어졌다. 다행히 잔은 깨지지 않았지만, 술이 카펫을 적시고, 소파 위로 올라오는 술 냄새가 윈프레드와 크로커다일을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멈추지 않고 이어가는 키스에 숨을 쉬지 못하여 윈프레드의 어깨가 작게 떨리는 것을 느끼고 크로커다일은 입술을 떨어트린 뒤 윈프레드의 몸을 가리는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크로커다일의 손이 윈프레드의 뺨을 덮는다. 미지근하고 건조한 자신의 체온과는 다르게 그의 몸은 따뜻했다. 크로커다일은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가라앉은 목소리로 윈프레드의 애칭을 불렀다. 위니. 허연 눈동자의 동공이 축소되면서 세로로 길어지더니,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를 응시했다.
단 한 발로 섬 하나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린다는, 신의 이름을 가진 최악의 고대 병기 ‘플루톤’. 흰수염에게 패배한 크로커다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최강의 군사력을 원하고 있었다. 플루톤이 잠들어 있는 곳의 위치가 알라바스타의 포네그리프에 새겨져 있을 터, 그것을 노린 크로커다일은 알라바스타에 정착해 바로크 워크스 Baroque Works 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플루톤을 얻고 알라바스타의 토지에 최고의 ‘군사 국가’를 세우는 것이 크로커다일의 목적이었다. 플루톤을 얻으면 자신의 왼손을 앗아간 흰수염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며, 해적왕도 머나먼 꿈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크로커다일의 목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해적도 해군도 없는 바다로 떠나자.”
해군은 플루톤을 손에 쥔 새로운 왕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크로커다일은 자신의 권력에 무력해진 윈프레드를 납치하여 새로운 모래 왕국의 왕비로 앉힐 셈이었다.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날 한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겠나? 그것이 설령 윈프레드가 바란 형태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크로커다일은 계획이 성공할 때까지 자신에게 기회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젯밤 윈프레드가 레인디너즈에 찾아왔다. 함께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가 취기에 몸이 달아오르더니 입을 맞추고 또 혼자가 되었다고 한다.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를 거부할 수 없었고, 두 사람은 서로가 만족할 때까지 배를 맞추었다. 크로커다일은 생각했다.
제 발로 내 손 안에 들어온 윈프레드를 이대로 보내줄 순 없었다. 애초에 그가 먼저 나를 바라고 찾아온 것 아닌가. 그렇다면, 차라리, 이 나라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내 곁을 떠날 수 없도록 만들까. 어차피 플루톤을 얻으면 그럴 생각 아니었나. 윈프레드가 자신이 할 수고를 덜어준 것이다. 이거 참, 고마워해야겠군. 그럼 위니를 어느 방에 가둘지 생각해 볼까, 하며 윈프레드의 뺨을 가리던 손을 치우고 다시 한번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던 찰나, 윈프레드가 눈을 떴다.
“……으응….”
겨울 하늘의 새하얀 구름을 보는 듯한 눈동자가 크로커다일을 바라보았다. 크로? 크로커다일이 품은 흑심을 알아보지 못한 윈프레드는 살짝 어리둥절함이 담긴 목소리로 제 눈앞의 남성을 불렀다. 윈프레드와 눈이 마주치고 그의 가련한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순간, 크로커다일은 아, 탄성을 흘렸다. 입을 다물고, 아무 말 없이 윈프레드를 바라보다가 크로커다일은 손마디로 윈프레드의 뺨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의 온기가 마음에 들었던 윈프레드는 고개를 틀어 크로커다일의 손에 얼굴을 기댔고, 그 모습을 본 크로커다일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에게 말했다.
“정 안 되겠으면, 며칠 동안 여기서 지내도 된다.”
넌 어찌 이리도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지.
크로커다일과 윈프레드의 사이엔 경계선이 있었다. 그 경계선은 강의 모습을 띄우고 있었으며, 윈프레드는 그 강 너머에서 크로커다일을 바라보았다. 크로커다일은 생각했다. 이 강을 넘어서 상대방의 곁으로 다가가는 사람은 윈프레드일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서로가 있었기에 찬란했던 그 시절, 크로커다일과 윈프레드는 함부로 맹세를 해서는 안 되는 강에서 서로에게 약속했다. 윈프레드는 눈물을 떨구며 두 손으로 크로커다일의 오른손을 포갰고, 크로커다일은 순순히 그의 온기를 받아들였다. 윈프레드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해적도 해군도 없는 바다로 떠나자. 그리고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서로의 곁을 떠나지 말자. 약속해줘.”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편에선 약속을 망설였다.
‘해적도 해군도 없는 바다라면, 난 해적왕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결국 크로커다일은 약속을 어겼다. 해적왕이 되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도 하지 않고, 윈프레드의 곁을 떠났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강의 여신은 크로커다일에게 저주를 내렸다. 하지만 크로커다일에게 건 저주는 목소리의 상실이나 죽음, 나락으로 향하는 문도 아닌, 사랑이었다.
약속을 어긴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네녀석이다. 너는 하데스의 후손을 사랑하고 있겠지? 그렇다면 더더욱 그를 사랑해라. 지독하게 얽히고 사랑해서, 네가 제 발로 그의 손안에 들어가. 후계자는 너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게 아니야. 네가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거다. 왜냐면 너는 사랑이라는 저주에 걸렸으니까. 평생 후계자의 곁을 떠나지 못해. 넌, 왕이 될 수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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